
4. 자연과 건축을 향한 애정
그렇게 열심히 오랜 기간 동안 정성 들여 만든 공간인 사유원은 누가, 무엇을 위해서 만들었을까? 사유원의 설립자는 대구에 있는 태창철강의 회장 유재성이다. 이 회사는 철강 자재를 가공하고 유통하는 기업이다. 대구에서는 꽤 큰 철강회사이지만 소비자들을 직접 대하지 않기에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이런 철강회사가 철강과 전혀 연관 없는 수목원 조성을 어떤 이유로 하게 되었을까?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노력을 투자했다. 하지만 대구 성서공단에 있는 태창철강 본사에 가보면 알 수 있다. 본사건물은 사선과 직선, 곡선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조형미가 가득한 공간이다. 마치 투박한 철강회사의 건물이 아니라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인상을 주게 된다. 대구의 향토건축가 박종석건축가가 설계한 이 태창철강 사옥은 야경이 더욱더 아름답다. 야간조명이 켜지면 은하수 같은 별빛이 외관에 새겨지게 되는데 이는 파리 에펠탑과 개선문의 조명디자인을 맡은 프랑스의 조명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지방의 철강회사가 세계적인 조명디자이너를 고용하여 본사를 설립한 것이다. 또한 본사 1층과 지하에는 300석 규모의 소극장도 있으며 건너편에는 1500평이나 되는 정원도 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유 회장이 얼마나 건축과 자연을 사랑하고 예술에 대한 깊은 열망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사유원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의 근간이 모두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사유원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알려진 바로는 '모과나무'라고 한다. 일본으로 밀반출되는 모과나무가 있다는 얘기를 우연히 듣고 목격하게 되는데 늙은 나무가 해외로 팔려간다고 느껴진 유 회장은 웃돈을 얹어 밀반출되던 나무를 다시 사들였고 그 뒤로 유 회장에게 노거수를 팔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유 회장은 노거수를 그렇게 하나 둘 사들여 사유원을 만들게 되는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 모과나무를 사들인 게 1989년이니 첫 시작은 약 33년 전이었던 것이다.
5. 사유원의 주인공?
사유원은 법적으로 수목원으로 신고되어 있고 실제로 수많은 노거수를 비롯한 각종 나무와 식물, 돌 들을 세심하게 조성한 수목원이지만 사실 이 거대한 공간의 주인공은 건축물이다. 건축가들의 다양한 생각이 합쳐 만들어진 수목원은 자연환경을 조성한 모습들 마저 철저하게 건축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연환경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건축설계방식을 이용해 관람객의 동선에 따른 시선의 이동을 세심하게 분석하고 해석해서 건축가의 의도대로 재구성하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들의 건축 작품들이 사유원의 곳곳에 숨어있다. 사유원 조성사업에 참여한 건축가들의 명성으로 보면 가장 먼저 놀라게 되는 첫 번째 건축가는 바로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건축가 '알바로 시자'이다. 알바로 시자는 사유원에 '소요헌', '소대', '내심낙원' 등 3가지의 건축물을 설계하였는데 '소요헌'이라는 이름은 유 회장이 장자의 '소요유'에서 이름을 따와 명명하였다. '우주와 하나 되어 평안하게 노닌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원래 이 건물은 피카소의 걸작 중 하나인 '게르니카'를 전시하기 위해 스페인 마드리드에 지어질 것으로 구상했던 '아트파빌리온'이었다. 하지만 설계를 완성했음에도 '게르니카'를 유치하는 데에 실패하면서 건축계획이 취소되었다. 이런 와중에 유 회장이 사유원이 지을 건축물을 설계할 사람을 물색하던 중 우연히 알바로시자의 아트파빌리온을 보게 되었고, 열심히 설득하여 마드리드가 아닌 한국의 경북 군위에 건물을 짓게 되었다. 소요헌은 기다란 상자의 모양 두 개를 Y자 모양으로 연결한 형태를 띠고 있다. 사유원의 대다수 건물들이 기능과 장식이 없는데, 소요헌의 공간의 두 갈래길 중에 하나의 끝에는 뚫린 천정을 통해 내려오는 철제 구조물이 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 한 철제구조물은 과격하고 날카로운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는 폭력과 전쟁을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다른 한쪽에는 생명의 탄생과 새로운 희망을 나타내는 거대한 달걀 모양의 구체 조형물을 설치하였다. 이렇듯 소요헌은 전쟁의 잔인함과 폭력성,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작은 희망을 나타내고 있다. 기다란 상자 같은 공간에서 독특한 공간감을 경험할 수 있고, 또한 천장이나 작은 틈새로 들어오는 빛이 벽과 바닥을 마주하면서 그려내는 다채로운 빛의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인 시간이 된다. 소요헌의 아래로 내려가면 알바로 시작의 작품 중 다른 하나인 '소대'가 있는데 소대의 뜻은 새 둥지 전망대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곳은 알바로시자가 소요헌을 한눈에 전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는 요구로 짓게 된 건물이라고 한다. 약 20미터가량의 전망대는 전방으로 15도 정도의 경사가 있는데 전망대 끝에 올라서면 수목원 단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마지막 알바로 시자의 건축물인 '내심낙원'은 사유원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동양철학과 그리스도교의 만남을 통해 찾아가는 마음의 정원'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이곳은 현해탄에서 윤심덕과 함께 투신한 김우진의 동생 김익진을 추모하는 작은 경당이다. 김익진이 번역한 가톨릭 서적의 제목을 그대로 건물의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김익진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소작농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가톨릭에 귀의하여 독실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사유원을 설립한 유 회장의 장인이다.
'건축 지식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워야하는 건축가, 승효상 (0) | 2023.02.09 |
---|---|
사유원? 뭐하는 곳이야?-part.3 (0) | 2023.02.05 |
사유원? 뭐하는 곳이야?-part.1 (0) | 2023.02.02 |
나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건축가, 켄고 쿠마 (0) | 2023.01.30 |
미국에서의 근대건축 운동 (0) | 2023.01.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