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건축적 개념
사유원을 설계한 또 다른 저명한 건축가로는 대한민국 건축가인 '승효상'건축가이다. 유 회장이 공간적인 개념을 정립하자 승효상은 더 디테일하게 사유원 전반의 설계와 건축물까지 공간의 부분마다 세심하게 생각을 보태어 밀도 있게 만들었다. 승효상이 사유원에 설계한 건축은 굵직한 것만 5가지이다. 이외에도 정문을 비롯하여 각각 다른 형태를 가진 생태화장실, 전망대, 벤치, 조명 등 수목원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부대시설들을 세심하게 디자인하였으며, 사유원의 곳곳에서 사유원을 전망할 수 있는 여러 위치의 전망공간을 설계하였다. 이는 공간을 설계했을 뿐만 아니라 관람객의 시선, 동선까지도 설계한 셈이다. 승효상이 설계한 사유원의 건축물들에는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징들이 있다. 그가 작업하면서 남긴 기록물을 보면 "수목의 풍경이 주가 되어야 하는 장소이므로 건축은 특별한 형태가 되지 않아야 했다. 그저 집 지을 장소만 잘 선택하면 그 주변 풍경을 잘 감상하는 시설로 족한 일이라 건축은 되도록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승효상이 설계한 건축물들이 하나같이 자기 자신을 과시하기보다 땅에 스며들어 낮은 자세를 유지하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그가 사유원에 설계한 건물들 중에 가장 먼저 준공된 공간이 소나무로 이뤄진 숲속 한가운데에 위치한 '현암'이라고 명명한 집이다. 현암은 '오묘하고 아름다운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가장 단순한 형태로 꾸밈이나 장식적인 요소가 없고 세 면을 모두 창틀이 없는 통창으로 마감하여 거대한 자연풍경의 파노라마를 실내로 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부를 개방하지 않아 들어가서 볼 수는 없지만 멀리서 보더라도 단정하고 소박한 한 채의 건물이 녹색의 숲과 어울려 빚어내는 모습이 돋보인다. 두 번째로 지어진 곳은 사유원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명정'이라는 곳이다. 명정은 지하로 굴착하여 지어진 건축물인데, 회랑을 만들고 물을 가두고, 벽의 재질을 다듬고 시간에 따른 빛의 흐름을 계획하여 더욱더 경건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을 만들어 냈다. 원래 사유원을 계획할 당시에는 이 자리에 전망대를 지어달라고 의뢰를 했었지만 승효상은 당시 높이 오르는 대신, 관람객을 지하로 끌어들여 관람객으로 하여금 사유원 관람 동선의 마지막에서 지금까지 보고 느낌 경관을 다시 되새김하는 전망대를 조성하였다.
7. 공간의 본질
승효상이 설계한 다른 건물들에서도 어느것 하나 예사롭게 넘길 수 있는 것이 없다. 공연장이자 레스토랑으로 설계한 '사담'은 산중의 연못 근처에 지어졌는데 그윽하면서 절묘한 공간감이 정말 놀라운 곳이다. 계곡에 있는 연못 '오당'의 주변에 세운 '와사'는 붉게 녹슨 코르텐강으로 만들어진 박스가 세 연못을 가로지르도록 지그재그로 이어 붙여 만든 공간이다. 천장과 벽면에 뚫려있는 여러 동그라미 모양의 개구부로 빛이 해의 기울기에 따라 스며들어 바닥과 벽에 둥그런 문양을 만드는 모습이 아름답다. 느티나무가 심겨져 있는 숲의 가장자리에 대나무를 사용하여 높이 지은 '조사'는 '새들의 수도원'이라는 뜻 그대로 새들을 위한 건축물이다. 비무장지대의 설치미술로 기획되었던 작품인데 세월이 지나면 삭아서 넘어지게 되면서 재료들이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심지어 화장실로 사용되는 '측간' 또한 방향을 돌려 타인의 시선에서 피하지만 사용자들이 사유원의 전경을 바라보며 일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하였다. 건축뿐만 아니라 조경분야에서도 사유원에 많은 노력을 들였다. 국내 최고의 조경가로 불리는 '정영선'이 사유원을 계획하는 초기에 전체적인 경관의 방향성을 다듬었고 일본에서 조경의 장인으로 인정받는 조경가 '가와기시 미쓰노부'는 냇가와 정원에 배치될 돌을 계획하였으며, 정영선 아래에서 일하던 조경사 '박승진'이 사유원의 마무리작업을 함께했다. 사유원의 건축물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다수의 공간들이 '쓸모'를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능이나 용도에 집중하지 않게 되자 규약과 제약, 규칙들도 사라지게 되었다. 온전히 공간 자체가 오브제로서 가치를 갖게 되어 자체적인 목적을 갖게 되었고, 건축가는 그렇게 공간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8. 공간과 시
사유원을 수목원으로써 해석해 본다면 수령이 300년이 넘은 모과나무를 콘크리트 벽 너머에 있는 연못과 구릉 주위로 108그루를 심은 수목원이다. 좁은 회랑으로 돌아 들어가면 시야가 탁 트이면서 서있거나 앉아있는 듯 한 모과나무 군락지를 마주하게 되면서 탄식을 자아낸다. 울퉁불퉁하게 나타난 수피의 모과나무 노거수가 멋지게 늘어서 뿜어내는 아우라가 웅장하다. 모과나무 아래에는 코르텐강 구조물을 수반처럼 배치하였는데, 오래된 나무의 흉터 같은 수피와 붉게 녹슨 쇠의 이질적인 질감이 잘 어울린다. 이 공간을 '풍설기 천년'이라고 부르는데 그 뜻은 '고난의 풍파, 그 몇천 년인가'이다. 사유원의 공간들 중간에는 한자들이 써져 있다. 경관마다, 공간마다 한자로 이름을 붙였다. 심지어 길가에 있는 철로 만든 벤치에도 '좌망심제'라는 이름을 붙여두었는데 '고요히 머물며 마음을 비우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한자들은 지어놓은 이름이기도 하고 경관을 바라보는 감상의 의미이기도 하며 때로는 시가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한자의 뜻을 알고 나면 사유원에서의 경험이 한층 더 생생하게 느껴질 수 있다. 사유원의 있는 숲 중에 배롱나무로 이뤄진 정원은 '별유동천'이고 느티나무로 이뤄진 정원은 '한유시경'인데 '별유동천'은 별천지의 다른 세상이라는 뜻이고 '한유시경'은 한가롭게 걸으면 시인의 경지에 이른다는 뜻이다. 또한 사유원의 정문은 '치허문'인데 이는 극도로 비움에 이르러 평온을 지킨다는 뜻이다. 이런 이름들은 설립자인 유 회장이 지어 붙인 이름들이다. 이런 이름들이 마치 힘이 넘쳐 날아갈 듯 한 필체로 새겨져 있다. 글씨는 중국의 서예가로 유명한 '웨이량'의 작품이다. 하나하나 공간의 이름이 지어질 때마다 중국을 오가며 받아온 글씨들이다. 사유원은 오래된 풍상을 견뎌 낸 나무와 자세를 낮춘 건축물들의 조화로운 연주로 만들어내는 고요한 공간이다. 자연이 위안이 되고, 이름이 풍류를 더하며 건축이 시선과 생각을 이끌어내는 곳이 사유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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