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축 지식 모음

비워야하는 건축가, 승효상

by 이다자 2023. 2. 9.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고등학교시절 친구로도 유명하지만, 그전에 본인의 업적 자체만으로도 건축학과를 꿈꾸는, 혹은 건축학과에 재학 중인, 나아가 건축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건축가가 있다. 그는 바로 승효상 건축가이다. 조만간 '유퀴즈 온 더 블록'에도 출연하신다고 하는데 어떤 대화를 나눌지 기대가 된다. 한국에서 김수근건축가의 아래에서 15년 동안 문하생 생활을 하다가 본인의 건축을 찾아 나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건축가가 된, 소위 '선생님'이라 칭하는 승효상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생애

1952년 10월 26일 태어난 승효상은 이북에서부터 월남을 하여 부산의 난민촌에서 자랐다. 굽이진 골목길을 따라 빽빽이 들어선 판자촌에서 자란 승효상은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도 좋아하고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후에 그는 한강 아래에서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로 꼽히는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경남고등학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수석입학한 학교로 유명하였으며 당시 문과에서는 문재인, 이과에서는 승효상이 학업에 두각을 나타내어 고등학생시절부터 유명했다고 한다. 그렇게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 진학하게 되는데, 누나를 워낙 좋아했던 승효상은 누나의 추천으로 건축학과에 대해 아무런 지식 없이 진학하게 되었다. 그렇게 1971년부터 1975년까지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에서 공부를 한 뒤에 1980년까지 김수근건축가의 '공간연구소' 설계사무실에 입사하여 업무를 익혔으며 1979년에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으로 인해 그는 세상과 건축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들로 인해 방황하던 중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빈 대학교에서 수학을 한 뒤에는 마차트 뫼비우스 및 파트너에서 근무를 하면서 '아돌프 로스'의 로스하우스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 다시 한국으로 귀국 후에 1982년부터 1989년까지 공간연구소의 대표이사직을 맡기도 하였다. 김수근건축가로부터 설계사무소와 함께 30억의 빚을 떠안은 그는 1989년에 모든 빚을 청산하고 이로재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한다. 
 

2. 4.3그룹

1990년에 그는 민현식건축가와 함께 학연을 지양하고 한국 건축의 새로운 담론을 요구하는 젊은 건축가 열네 명이 모여 만든 4.3그룹을 만들었다. 4.3 그룹의 이름은 1990년 4월 3일 승효상을 포함한 12명이 모여 결성하였고 후에 11월에 두 명이 더 가입하게 되면서 14명이 되었다. 그 당시 한국 건축계에는 학연이 막연한 시대였다. 같은 학교를 나온 사람들끼리 뭉쳐 움직이고 세력을 만들고 그들만의 리그로 움직였다. 그래서 처음으로 그런 출신학교를 제외하고 모인 젊은 건축가끼리 담론을 형성하고자 모였던 것이다. 그렇게 모두들 서로 논쟁을 벌이며 각자의 삶과 타인의 삶을 고민하게 되었고 승효상 건축가도 많은 관찰을 통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서울의 달동네를 보며 자신의 어릴 적 살던 곳의 모습이 떠올랐고 이를 시발점으로 생각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울의 모든 달동네를 돌아다니며 조사하기 시작하고 결국 1992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4.3그룹의 전시가 있던 때에 '빈자의 미학'을 처음 내걸게 되었다. 4.3그룹으로 활동하던 이때 승효상이 설계한 유홍준의 개인 주택인 '수졸당'은 후에 평생 동안 그의 건축 철학이 된 '빈자의 미학'을 완성해 낸 첫 번째 작품이 되었다.
 

3. 빈자의 미학

빈자의 미학은 '가난한 사람의 미학'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의 미학'이라고 한다. 그는 조형물과 건축물로 가득 채워진 근대 한국은 종묘처럼 어떤 형태의 모임과 사유가 가능하게 하는 '비움의 아름다움'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빈자의 미학'이 완성된 공간이 수졸당이라고 했는데, 수졸당은 '졸렬함을 지키는 집'이라는 뜻이다. 수졸당은 동선이 복잡한 집으로도 유명하다. 아파트 같은 현대 건축물에서 나타나는 최고의 효율을 자랑하는 단순한 동선을 지양하기 때문이다. 그가 설명한 복잡한 동선의 이유는 집을 통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움직여야 사람이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하며 그것이 운동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향성을 가진 그는 선함과 진심함, 아름다움 등을 순간마다 발견할 수 있는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해가 떠오르는 모습에 감탄하고 해가 지는 모습에 감동받는 것이다. 빗방울 소리를 듣고 빛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등의 설계를 통해 건축가는 사람에게 사유의 순간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그는 건축을 통해서 이렇게 얼마든지 사람들의 감정과 감수성을 뒤흔들 수 있다고 하며 건축을 가지고 사람들의 삶을 희롱하거나 농락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한편 그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묘역을 설계하기도 하였는데, 화려하고 웅장한 묘역이 아니라 아주 간결하고 소박한 묘역을 설계하였다. 추모글이 닳고 닳아 없어지면 기억만 남게 되는 '비움의 설계'를 완성시켰다. 일부 언론에서는 봉하마을의 이미지와 철판이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언 중 하나였던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기라'는 말을 지켜내지 않고 1000평에 가까운 묘역을 만들었다는 비판들이 있었지만 가득하게 채워진 화려하고 장엄한 묘역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기억되고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2023.02.05 - [건장인의 일상생활/건축 지식 모음집] - 사유원? 뭐 하는 곳이야?-part.3

사유원? 뭐하는 곳이야?-part.3

6. 건축적 개념 사유원을 설계한 또 다른 저명한 건축가로는 대한민국 건축가인 '승효상'건축가이다. 유 회장이 공간적인 개념을 정립하자 승효상은 더 디테일하게 사유원 전반의 설계와 건축물

stoneheadsnowboarder.tistory.com

 

반응형

댓글